취향의섬 북앤 띵즈
종이책을 만나러 책방까지 걸어오는 그 발걸음, 요즘 같은 세상에 너무 귀하죠

INTRODUCE YOURSELF
본인을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취향의섬 북앤띵즈는 서귀포 시내권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넓은 귤밭 속에 파묻혀있어 일부러 찾아오지 않고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책방이에요. 우리 동네에 이런 곳이 있었다고? 하면서 놀라시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보며 저는 우리 책방이 ‘의외성의 매력’을 가졌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공간을 운영하게 된 특별한 계기나 이야기가 있나요? 어떤 꿈을 가지고 시작하셨는지 궁금해요.
어릴 때 서점에 가서 노는 것을 좋아했어요. 90년대~2000년대 초엔 규모가 큰 개인 영업장 서점들이 시가지마다 꽤 많았잖아요. 그런 서점들을 돌아다니면서 놀았어요. 만화책, 소설책, 악보, 욕심나는 물건들은 잔뜩 있지만 가진 돈이 적으니 늘 손에 쥐었던 많은 것들을 아쉽게 내려놓으며 서점 사장님들을 보며 ‘이 책들이 다 저분 꺼 구나’하면서 부러워했어요. 30대가 되어 이 공간을 만났을 때, 어릴 때 꿈을 한번 실현해보자 하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손님들이 가끔 카운터에 한량처럼 앉아있는 저한테 부럽다고 하시는데 그럴 때마다 어릴 때 생각이 나서 속으로 웃어요.

운영하시는 공간의 자랑거리나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매력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크게 자랑할 것은 없어요. 커피도 팔지 않고, 책도 그다지 많지 않아요. 큰 창 너머에 펼쳐진 드넓은 귤밭과 한라산의 듬직한 양어깨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과 사시사철 푸른 정원에 온갖 새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전부예요. 거기에 제가 골라둔 책과 물건들이 그냥 세들어있을 뿐이에요.

이 마을의 가장 큰 매력과 특별한 점을 하나 말해주신다면요?
아직 여행자의 신분이었을 때 제주도의 동쪽, 서쪽, 북쪽에 다 살아봤어요. 어느 날 벽화 작업을 하러 서귀포에 2주 정도 와있었는데, 그때 서귀포 칠십리시공원을 매일같이 산책하며 여기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여긴 시내권이라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은 다 있으면서도 대도시에서 살다 보면 쉽게 익숙해져 버리는 ‘과함’이 없어서 좋아요. 게다가 자연과 가까우니 더할 나위 없죠. 특히 책방이 자리 잡은 이곳 호근동은 서귀포 신시가지와 구시가지의 중간지역에 있어 어디든 쉽게 나갈 수 있으면서도 번잡스럽지 않아 좋아요. 책방이 칠십리시공원과 가까워요. 책방에서 산 책을 칠십리시공원에서 읽어보시면 좋을 거예요.

공간을 찾는 여행객들에게 제공하는 특별한 경험이나 서비스가 있다면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저희 책방 2층에 북스테이가 딸려있어요. 텔레비전을 치우고 독서 경험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획했어요. 잠깐 들렀다 가는 책방이 아쉬울 땐, 사방이 고요한 귤밭 한가운데에서 하루를 온전히 묵어보는 것도 좋을 거에요. 낮에는 햇살에 빛나는 나뭇잎들 사이로 새소리가 가득하다면, 밤의 이곳은 풀벌레 우는 소리와 창 너머 한라산의 거대하고 검은 실루엣이 정말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거든요.

공간을 운영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솔직히 지금까지도 ‘종이책’을 사러 책방에 오시는 손님들을 보면 여전히 신기해요. 모든 게 너무 ‘편한 방향’으로 ‘빠르게 세팅’되고 있는 세상이잖아요? 인터넷에서 책을 주문하면 1~2일 이내로 받을 수 있고, 그마저도 데이터로 구매한 컨텐츠를 화면으로 읽는 것을 선호하시는 분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죠. 이 와중에 무거운 책을 직접 들어 한 장 한 장 넘기며 고른 끝에 또 구매한 책을 직접 집까지 들고가야 하는 책방을 일부러 찾아오신다는 것이 전 매번 감동이에요. 특히, 책방을 처음 열었던 계절이 겨울이었는데요, 폭설이 쏟아지던 날, 수 킬로미터를 걸어서 책방까지 오셨다던 손님의 빨갛게 물들었던 뺨이 여전히 가장 기억에 남아요. 종이책을 만나러 책방까지 걸어오는 그 발걸음, 요즘 같은 세상에 너무 귀한 것 아닌가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진행하는 활동이나 협력하는 부분이 있나요?
제주에서 창작 활동을 하시는 다양한 분야의 작가님들과 이웃들을 책방 정원에 모셔서 플리마켓을 두 번 열었었는데, 책방을 중심으로 여러 에너지가 모이는 모습이 즐거웠어요. 기력이 달려서 작년엔 못했는데, 올해 가을엔 또 열어볼까 해요.

공간 운영 중에 겪으신 어려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끼는 보람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종이책은 연약한 물건이에요. 이 먼 섬의 남쪽까지 오면서 손상되기도 하고, 매대에 올라 여러 사람의 손을 타면서 손상되기도 하죠. 책방에 도착한 책들의 표지가 구겨져 있거나, 책방 어딘가에서 손님이 책을 떨어트리거나 종잇장이 찢기는 소리가 들리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요. 생각보다 많은 분이 매대 위의 책을 함부로 다루면서도, 책을 구매하실 땐 ‘새 책으로 주세요’라고 말씀하세요. 그렇게 선택받지 못한 채로 오래도록 떠나가지 못하는 책들을 보면 마음이 안 좋아요. 궁리 끝에, ‘책에 남은 여행의 흔적들을 이해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써서 서가에 붙여뒀어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오며 몸과 마음 여기저기에 상처와 흔적이 남더라도 우리 자신이 그 자체로서 아름답고 가치 있듯이 책도 그렇다는 취지의 글이었죠. 글을 붙인 이후로 책의 손상도 줄고, 새 책을 달라는 요청도 확연히 줄었어요. 그뿐만 아니라 그 글에 공감하셨다고 말씀하시며 빛바랜 표지의 책들을 데려가시는 분들도 많아졌어요. 책은 연약한 물건이지만, 글의 힘은 강하다는 것을 느끼며 놀랐어요. 책은 연약한 물건이면서도 그 안에 글을 가득 싣고 있으니 결코 약한 물건이 될 수 없겠다고 느꼈어요. 짧은 글로도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였는데, 책 한 권의 힘은 얼마나 클까요? 얼마나 많은 마음과 지혜들이 책방 안을 채우고 있을까요?

하루 중 우리 공간이 가장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맑은 날 늦은 오후의 책방은 정말 아름다워요. 창밖으론 서쪽으로 기운 태양의 빛을 잔뜩 받아 붉게 달아오른 한라산의 기슭들이 선명하게 보이고, 책방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의 그림자가 키다리 아저씨처럼 길게 늘어지죠. 어떤 음악을 틀어놔도 근사해요. 그리고 그 시간엔 대부분 손님이 없어요. 맑은 날에는 다들 밖에 나가 노느라 책 사러 안 오시거든요. 혼자서 맛보는 호사스러운 순간이에요.


마을에 여행 오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숨은 명소가 있다면 어디인가요?
이른 아침에 돔베낭길을 걸어보시는 것을 추천해요. 바다 위 절벽을 따라 잘 닦인 산책로를 걷다보면 외돌개를 만날 수 있어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조용히 사색하는 산책을 즐길 수 있어요. 고근산에 올라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뒤로는 한라산, 앞으로는 서귀포 시내와 드넓은 바다를 만나보세요. 고근산에 있는 망원경을 통해 귤밭 가운데 숨어있는 저희 책방도 찾아보시고요. 실제로 보인답니다!